“北고위층 이반? 체제보위 조직지도부 있는 한 가능성 낮아”

“탈북은 늘어날 수 있겠지만, 북한이란 체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체제를 보위하고 있는 조직지도부 등이 건재하다면 북한 체제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실화소설 ‘비운의 남자 장성택’을 펴낸 탈북 작가 장해성(71) 씨는 고위층과 해외 노동자 연쇄 탈북에 따라 핵심계층 민심 이반 및 북한체제 붕괴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과 관련, 최근 진행된 데일리NK와 국민통일방송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장 씨는 이어 “최고존엄이라는 김정은이 북한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김정은의 지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조직지도부다”면서 “내부에서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어떤 일이 발생할 조짐이 있다면 조직지도부가 앞장서서 그 싹을 잘라버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립군·항일 빨치산 활동을 했던 선대(先代)의 영향으로 북한에서 좋은 성분으로 분류된 장 씨는 호위총국(경호부대) 복무, 최고 명문대학이라는 김일성종합대학(철학부) 졸업 등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특히 김일성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곳으로 엄밀히 선출된 인원만 근무할 수 있다는 조선중앙방송 정치 교양국 혁명 1부 기자로서의 경험은 북한 내부의 권력 암투가 생생히 담긴 이번 소설의 주요 원천이 됐다. 

장 씨는 “문학적으로 일부 가공된 부분은 있지만 실화소설의 형식이기에 내용 중 80%는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서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비밀은 항상 최상위 층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북한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인 4급 기자 생활을 하면서 비밀에 다가갈 수 있는 위치에 근접해 있었고, 특히 김일성에 대한 것들을 많이 알게 됐다”고 밝혔다.

책은 인간 장성택의 고뇌 형식을 빌어 북한 권력구조에 일침을 날린다. 인민의 행복을 위해 개혁·개방만이 답임을 김일성, 김정일을 포함한 북한 지도부가 알고 있었음에도 체제의 지속과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이를 묵살했다는 것.

저자는 “2002년의 7.1 경제개선조치 주도, 황금평 개발 등 장성택은 인민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라면서 “개혁·개방 시도가 체제위협으로 여겨졌고 결국 숙청당했다. 통일이 되면 재평가돼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북한 정치사에 있어 획기적인 날’인 1967년 5월 25일 이후, 북한은 인민을 위한 나라가 아닌 김일성을 위한 나라가 됐다.

“당중앙회의 제4기 15차 전원회의의 결론교시였던 소위 5.25 교시 이후 김일성의 1인 독재가 구축됐습니다. 조금이지만 남아있었던 당(黨)내 민주주의가 말살되고 모든 보고는 김일성에게만 올라가게 됐습니다. 그것이 세습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겁니다.”

북한 당국이 탈북자들을 ‘배신자’로 비난하는 것과 관련 장 씨는 “누가 진짜 배신자인지를 물어보고 싶었다”면서 “인민을 위한다는 사회주의를 배반하고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인 김일성, 김정일이 진짜 배신자가 아니냐”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이어 “우리 집안은 사회주의 체제에 충성을 다해 왔다. 하지만 결국 김일성, 김정일이 그 체제를 배신하고 반인륜적인 길로 나섰다”면서 “결국은 그 체제에 살 수 없어서 떠나왔고, 이 책을 통해 북한이란 체제의 실체를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최근 실화소설 ‘비운의 남자 장성택’을 펴낸 탈북 소설가 장해성(71, 사진 오른쪽)씨./사진=데일리NK

[다음은 저자와의 인터뷰 전문]

-북한에 있을 때 조선중앙방송 정치 교양국 혁명 1부 기자 생활을 했다. 소위 김일성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곳으로 성분이 좋아야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성분을 중요시 여기는 북한에서 혁명 1부 기자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원래 중국에서 태어났다. 정확히 중국 길림성 화룡현 두도구 용평촌이란 산골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열일곱 살까지 살다가 1962년도에 북한에 들어갔다. 몰랐는데, 북한에 들어가 보니 일반 주민들에 비해 성분이 아주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독립군 홍범도 부대에서 소대장도 했고 이후에 북한에서 말하는 소위 항일 빨치산 활동도 하셨다. 집안 어른들도 북한에서 높게 평가하는 전투에 참가했었다. 북한 당국이 가족들의 이런 활동을 평가했고 결과적으로 성분도 일반 주민들보다 월등하게 좋았다.

이런 성분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갈 수 없는 호위총국에서 군 복무를 하기도 했고, 제대 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을 거쳐 조선중앙방송 정치 교양국 혁명 1부 기자를 하게 됐다. 지적한 것처럼 혁명1부는 김일성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부서였다. 그 부서에서 기자 생활을 10년 정도 했고, 1985년도부터는 드라마 작가로 10년가량 활동했다. 그러니까 1996년도에 탈북해 한국에 오기까지 조선중앙방송에서 대략 20년 정도 근무한 셈이다.

-북한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그런 경험이 이번 책 집필에 상당히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비운의 남자 장성택’ 제목이 참 흥미롭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다면?

솔직히 이야기해서 북한에서 탈북자들을 배신자라고 이야기하는데, 누가 진짜 배신자 인지를 반문하고 싶었다. 나처럼 ‘사회주의’ 체제에 충성했던 사람이 등을 돌리고 나온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김일성, 김정일이 진짜 배신자라는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우리 집안은 사회주의 체제에 충성을 다해 왔다. 하지만 결국 김일성, 김정일이 그 체제를 배신하고 반인륜적인 길로 나섰다. 결국은 그 체제에 살 수 없어서 떠나왔고, 이 책을 통해 북한이란 체제의 실체를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

-실화소설 형식이다. 책 내용을 어디까지 사실로 봐야할까?

80% 이상은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독자들에게 흥미를 주기 위해 문학적으로 가공한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실이다. 특히 김일성이 자신의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여 나갔던 과정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김일성이 박헌영 계의 남로당을 몰살시켰던 과정서부터 종파 사건, 숙청 등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해 나갔던 과정 등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즉 피바다 위에서 김일성의 사상체계·독재체제가 성립됐다고 말할 수 있다.

-책 속에는 북한 내부의 권력 암투가 생생히 묘사돼 있다. 그런 정보들은 어떻게 접했는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비밀은 항상 최상위 층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4급 기자까지 했고, 작가 급수로도 3급까지 했다. 그 정도면 북한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라고 할 수 있다. 비밀에 다가갈 수 있는 위치에 상당히 근접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들은 내용도 많지만 직접적으로 내가 접한 것도 있다. 물론 북한에 있을 때는 얻은 비밀을 누군가에게 한마디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 때 알게 됐던 내용들을 이번 책에 다 쏟아냈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부분은 정치 교양국 혁명 1부 기자로서 김일성의 삶에 대해 자세히 파고들수록 자랑하고 내세울만한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때 내가 얻게 된 정보들, 당(黨), 정(政), 군(軍) 출신의 고위 탈북민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 또 북한전문가들과의 토론 등을 거쳐 취합된 내용들을 실화소설 형태로 출간했다.

-책의 주인공, ‘장성택’과도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지?

그렇다. 장성택을 실제 만나 본 적이 있다. 가까운 사이라곤 할 수 없지만 1977년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일주일 정도 식사도 하고 대화를 친밀하게 나눴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장성택이 괜찮은 사람이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장성택과 같은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이다. 장성택은 군 복무를 하지 않고 바로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나보다 8년 정도 빠르다. 나는 철학부였고, 장성택은 경제학부 출신이다. 소설에선 극적 재미를 위해 장성택을 역사학부 학생으로 설정했다. 김정일의 동생 김경희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출신이다.

-책에선 장성택을 호방하면서도 때로는 꼼꼼하지 못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랬다. 일주일가량 생활할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장성택은 술도 잘 마시고 놀기도 잘 놀았다. 하지만 하나씩 열거할 수 없지만 꼼꼼하지 못한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래서 그때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소설 속, 장성택의 성격을 묘사했다. 또한 실제로 장성택은 인물도 훤칠하고 성격도 호방했다. 소설에서도 나오지만 손풍금을 기가 막히게 찼다. 그 당시 북한 처녀들이 이런 장성택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흥미로웠던 대목이 장성택과 김경희의 사랑 이야기다.

물론 이야기 전개를 재밌게 구성하기 위해 어느 정도 각색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장성택이 그만큼 매력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김경희가 수령의 딸이라고 할지라도 따를만 했다. 그래서 실제로 결혼까지 한 것이다. 또한 그 당시 북한에 자유연애 풍조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결혼할 수 있었다. 단 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김정일 만큼은 이 둘의 사이가 못마땅해 장성택과 김경희의 연애를 훼방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책은 계급이 없는 사회를 지향했던 북한이 오히려 더 철저하게 계급과 신분위주의 사회로 바뀌게 된 것이 바로 1967년 5월 25일 이후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 날이 북한 정치사에 있어 획기적인 날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 무렵 당중앙회의 제4기 15차 전원회의가 있었는데, 전원회의의 결론 교시가 1967년 5월 25일에 나오게 된다. 결론적으로 김일성이 1967년 5.25교시를 내놓으면서 박금철 등 갑산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한다. 명목상으론 자본주의 사상, 수정주의 사상, 봉건유교사상 등을 가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소위 5.25 교시 이전에도 북한에선 김일성의 개인독재가 일정정도 수립됐었지만 그래도 당(黨)내부에서는 민주주의가 조금은 남아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5.25 교시 이후부터는 당내 민주주의가 다 말살되고 김일성의 1인 독재가 구축된다. 모든 사안에 대한 문제제기는 김일성에게만 보고되게 됐다.

-1980년대 말,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고 중국과 베트남은 개혁개방을 통해 체제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책은 김정일이 개혁·개방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쉽게 말하면 김정일이 김일성의 권력을 세습 받았을 때, 김일성의 업적 등을 부각시켰던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업적 등이 날조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당시만 해도 김일성과 함께 만주에서 항일 빨치산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김일성 보다 높은 급(지위)에 있었던 사람도 많이 존재했다. 그러니까 만약 김일성이 죽기만 하면 김일성 보다 북한 체제 성립에 공이 많았던 사람들이 ‘김일성도 수령을 했는데 나도 할 수 있다’면서 나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북한 체제 성립에 공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김정일은 그것이 두려웠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날조된 역사를 선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개혁·개방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거짓말이 모두 들통 나고 날조된 역사들이 공개되면 김정일이 그 자리를 지킬 명분이 없어진다.

-2013년 장성택이 전격적으로 처형된 일은 큰 충격이었다. 책은 장성택이 인민을 위해 개혁·개방을 시도하다가 결국 제거된 것으로 묘사했는데, 실제 장성택이 개혁·개방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나?

그렇다. 대표적인 것이 장성택이 주도한 2002년의 7.1 경제개선조치였다. 1990년대 후반 대량 아사 시기 이후 북한 경제가 회생 불가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 김정일이 장성택에게 권한을 주고 경제개선을 꾀해보라고 했을 때 나온 조치가 바로 7.1 경제개선조치였다. 그때 장성택은 황금평 개발 등도 추진하려고 했는데 중국의 양빈 등과의 문제가 얽히면서 계획이 파탄 나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조직지도부와 장성택 간의 암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장성택이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해도 조직지도부를 당해내진 못한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북한에 살면서 간부들에 대한 숙청, 치열한 권력 암투를 지켜보셨다. 김정은 집권 이후 숙청, 파벌간의 권력 암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과거와 다를 것이 없다. 33살로 알려진 김정은이 인민애를 선전하며 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지만 배후에는 조직지도부가 있다. 조직지도부가 작전을 세우고 숙청 등도 계획한다. 모든 것을 김정은이 결정한다고 하지만, 김정은의 지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조직지도부다. 장성택 처형 이후에도 많은 간부들이 숙청됐는데, 그것은 김정은의 눈에 난 것이 아니라 조직지도부 눈에 나서 숙청된 것으로 봐야 한다. 조직지도부가 당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조직지도부에 의해 돌아간다고 보면 된다.

-최근 탈북이 증가하면서 북한 체제가 위태로운 거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탈북은 늘어날 수 있겠지만, 북한이란 체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 체제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지도부가 건재하다면 북한 체제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설혹 내부에서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어떤 일이 발생할 조짐이 있다면 조직지도부가 앞장서서 그 싹을 잘라버릴 것이다. 장성택이 숙청된 이유도 같은 이유다. 개혁·개방 움직임이 체제를 위태롭게 한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탈북 작가 장해성 씨와의 인터뷰 장면. /영상=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