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7차 당대회서 김정은式 개혁개방 드러날것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한지 벌써 4년이 되었다. 그의 권력입지가 공고한지 여부가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지만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그의 통치철학과 노선이 어디를 지향하는지의 여부다. 노선이 지향하는 바를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한다면 그가 실용주의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주체노선을 견지할 것인가로 압축된다. 주체노선은 김일성의 철학을 기조로 삼아 이념을 지고 (至高)의 가치로 지켜나가는 것이며, 김정일 통치 시기까지 지속되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지금까지 실용주의 노선을 제대로 걸어보지 못했고, 그 길을 선택하는 경우 정권은 물론 국가체제도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중국이 걷고 있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모델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최고 통치자의 결단인지, 아니면 지도자를 옹위하는 권력핵심층의 선택인지 모호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필자는 후자로 해석한다. 최고 통치자보다는 이를 떠받치는 권력 실세들이 더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절대 권력 아래에서는 권력 실세들이 최대의 수혜자들이다. 지도자보다는 그를 옹위하는 세력들이 더 보수화되기 마련이며, 이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대대손손 지키기 위해 지도자의 안목을 가리거나 변혁을 선택하는 데서 야기되는 위험을 거론하며 현실에 안주하기를 원한다. 이에 비해 지도자는 자신의 절대적 지위를 사수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큰 업적 쌓기를 원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지위가 더 공고해지기를 열망한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두 통치자도 절대 권력의 지위를 다지는 과정에서 철권통치를 행사하면서도 틈틈이 개혁과 개방 쪽으로 움직임을 보인 적이 있다. 김일성은 통치 기간 내내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안정적 구축에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그 한계가 드러나게 되자 1980년대 초반, ‘합영법’과 ‘독립채산제’ 등의 조치를 내놓으면서 경제 개방을 향한 첫 걸음을 시작했다. 이렇다 할 성과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자력갱생’ 방식의 원조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갖는 한계를 인식했다는 측면에서 볼 때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개방경제 노선에 대한 탐색은 후계자 김정일에게로 넘겨졌다.

아버지 김일성의 유훈통치 3년을 지낸 1997년 김정일이 ‘당 총비서’로 추대되면서 본격적인 통치를 시작하던 즈음 필자는 김정일의 국가전략 노선이 어디를 지향하는지 주목하였다. 특히 2001년 그가 중국 상해를 방문했을 때 ‘상해가 천지개벽했다’고 말하고, 이것이 중국 공산당의 개혁 개방정책 때문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김정일이 상해를 보고 이렇게 평가한 것은 그가 젊은 시절이었던 1983년에 이미 상해를 둘러 본 적이 있어서 비교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1983년 당시의 상해는 개발 이전이었으므로 2001년의 변화된 상해와 비교했을 때 천지가 개벽했다는 소회를 피력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2001년의 중국 방문에서 김정일은 몇 가지 특징을 남겼다. 북경을 먼저 거치지 않고 바로 상해로 향했다는 점, 그리고 당-정-군의 실세 모두를 수행자로 대동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방문에서 얻은 교훈의 결과는 2002년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하는 조치로 나타났다. 그리고 2004년과 2006년에 또 다시 중국을 방문했는데, 2006년의 방문에서 그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천지개벽한 상해를 돌아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번에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위업 수행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는 여러 경제특구들을 돌아봤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방문에서는 당과 군의 실세를 제외하고 경제 분야 실세를 대동했다.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제외하고는 박봉주 내각 총리와 박남기·리광호 노동당 부장, 로두철 내각 부총리 등 경제 브레인들이 주를 이뤘다.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내비쳤던 그의 의중을 분석하면서 필자는 김정일의 국가전략 노선이 개혁개방 정책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선군정치’의 노선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북한은 2004년 1월부터 ‘선군사상 일색화’를 주창하면서 전통적인 주체노선을 다지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여기에는 김정일 스스로가 김일성에 버금가는 통치자로서의 입지를 다질만한 자신감이 없었다는 이유가 일차적 원인이었지만 좀 더 구조적인 원인도 작동했다고 본다. 빨치산 세력으로 주축을 이룬 군부 원로세력들이 개혁 개방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김정일은 이들의 영향력에 의존하면서 통치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여겼고, 그래서 ‘강성대국’의 구현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성공으로 일체화시켰던 것이다. 북한 인민에게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통치 스타일을 구축하기보다는 김일성 유훈과 원로 군부세력의 힘을 빌려 통치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믿었다. 김정일의 군부 앞세우기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사회와 인민을 상대로 ‘군대 따라 배우기’를 종용하면서 군사문화와 기풍을 통치의 핵심 개념으로 삼았다. 이러한 모습은 집권 초기 개혁개방을 탐색하던 그의 움직임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김정일이 통치 초기에 염두에 두었던 개혁개방 노선은 동력을 얻지 못하고 유실되고 말았다. 여기에는 군부를 주축으로 하는 권력실세들의 저항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본다. 절대 권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권력실세 그룹에서 새로운 엘리트들을 충원하는 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충원되는 엘리트들은 정치 분야에서가 아니라 경제, 행정, 과학기술 등 전문 테크노크라트들이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의 권력실세는 이들을 충원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습을 더 원한다.

그 결과 북한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실세들의 면면을 보면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의 유명세를 타고 실세그룹에 오른 인물들이다. 더구나 김정일 통치 시기에는 권력실세들에게 무한대의 시혜를 베풀며 이들을 포용하려 하였으므로 권력실세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서도 테크노크라트들에게 신분과 지위 상승이 허용되지만 이들이 권력 실세그룹에 진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면 된다. 김일성 김정일 시기에 제한된 수준에서나마 개혁개방 조치를 내놓고 추진하다가 갑자기 이를 접고, 실무 역할을 맡았던 테크노크라트들을 숙청한 것도 결국 배후에서 권력실세들이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정권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개혁 개방에서 야기되는 정치 사회적 혼란을 중대한 위기로 거론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개혁개방은 이대로 물 건너간 것일까? 필자는 새로운 통치자 김정은이 이 노선을 실천에 옮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우선 그의 통치 행태에서 드러난 특성을 보면 나름대로 카리스마 구축에 힘쓰고 있는 모습이 관찰된다. 아버지 김정일 보다는 김일성 통치 리더십을 구현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이것은 그 자신이 김일성 카리스마를 따라 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식 연설을 주저하지 않고 인민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대외에 피력하기를 원한다. 동시에 철권을 휘두르는 폭압정치도 구사할 자신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절대자의 위엄에 도전을 가할 잠재적 위협 세력에 대해서는 인척은 물론 연배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척결하는 모습도 이미 연출하였다. 권력입지를 공고히 구축하기 위해 그 어떤 배후세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 초월적인 위치에서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김정은 통치 아래에서 어디가 배후세력이며 누가 실세 위치에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김정일보다는 김일성 통치 스타일과 유사하다. 이러한 그의 통치 스타일이 안정적으로 구축되면 개혁개방을 추진하기에 유리하다고 본다. 권력입지가 유약하면 배후세력의 힘에 의존하려 하고, 이렇게 되면 자신의 비전을 세우는 것은 물론 비전을 추진하려는 의지도 강력하게 나올 수 없다. 아직 김정은의 국가비전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 그가 그러한 비전을 세우기 이전의 정지작업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권력 입지를 공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국가 비전을 수립하는 것이다.

김정은이 ‘선군정치’ 노선에서 탈피하여 노동당의 위상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할 좋은 조짐이라고 해석된다. 때 마침 북한에서 내년 5월경에 제7차 당 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1980년 이후 36년 만에 당 대회가 열리는 것이므로 이러한 결정은 북한 정치의 역사에서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다. 북한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므로 국가 통치 시스템은 노동당을 정점으로 국가정책이 이끌어져야 한다. 김일성 통치 후반기부터 지금까지 이 시스템이 무너지고 일종의 국가 비상사태와 같은 비정상적 상태로 국가가 운영되어 왔다. 김정일 통치 기간에는 그러한 비정상이 극에 달하여 일종의 계엄 상태와 유사한 위기관리 시스템으로 국가가 운영되었다. 그런데 김정은이 통치하면서 군부 원로들을 포함한 군부 지도층 인사들에 대해 ‘길들이기’를 공개적으로 시행하고, 그동안 약화된 노동당 조직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동당의 재건과 부활이 반드시 개혁개방정책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즉 ‘선군정치’가 국가노선을 주도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노동당 재건이 개혁개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더 높다. 여기서 말하는 개혁개방은 중국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식 개혁개방은 특성상 김일성 김정일 시기에 취해진 프로그램과 유사하다고 봐야 한다. 다른 점을 찾는다면 김정은 통치시기에 펼쳐질 개혁개방이 선대 통치자의 프로그램보다 더 폭이 넓고 추진방식에서도 더 유연할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것은 김정은이 지금까지 보여준 통치행태에 근거한 것이며, 대담하면서도 비교적 자유분방한 성격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개혁개방 프로그램의 대강은 내년에 개최되는 제7차 당 대회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김정은의 국가비전이 개혁개방쪽으로 무게를 둘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또 있다. 근래에 북한 사회 저변에서 흐르는 경제상황의 변화가 그것이다. 식량사정이 개선되고 있으며, 미력하나마 경제여건 전반에서 새로운 활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활력은 시장이 확대되고 중국과의 민간 차원 경제교류가 증가한 때문이라고 한다. 이미 북한 경제는 시장 의존도가 상당 수준 높아진 상태이며, 국가 통제는 약화되는 추세를 보여 왔다. 금년도 7월 미국의 ‘의회조사국’이 발표한 보고서 역시 북한 경제가 시장을  중심으로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최근에 감지되는 북한 경제의 회복세는 이러한 시장의 확대가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내년에 개최될 노동당 제7차 대회는 김정은의 통치 비전이 공식 제기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과거 중국이나 구소련,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혁개방 노선을 전면 채택할 때에도 당 대회를 통해서 이를 천명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정은이 당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역사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특수 효과도 수반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통치 5년은 정치적 카리스마를 구축하기 위한 정지작업 기간이었다. 당 대회는 인사문제를 포함한 국가전략 노선이 제시되는 국가의 최고 정치행사이다. 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세대교체를 포함하여, 더 중요하게는 국가 전반의 발전전략이 새롭게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새로운 개혁개방 프로그램의 윤곽도 여기서 제시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