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철 처형 이후 北군부의 기획도발 위험 높아

우리나라의 국방장관격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처형되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북한 외부에서 보는 시각은 대체로 한 방향으로 수렴되는 듯하다.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흔들리고 있으며, 그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주요 인사들을 참혹한 방법으로 제거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보도된 현영철 처형방식이 사실로 확인되면 김정은을 공포정치의 주역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 장성택 처형 방식을 함께 연상한다면 현영철 처형도 그에 못지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젊은 지도자가 권력 입지를 공고하게 다지려면 신뢰가 가는 세력을 모아 권력 장치를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게 맞다. 기존의 권력 실세들은 타성에 젖게 마련이어서 아무리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려 해도 젊은 지도자의 눈에 들 리가 없다.

통치자 김정은에게 가장 다급한 문제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 데서 올 것이다. 누군가가 지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비전을 만들어서 제안해야 하는데, 김정은의 속내가 무엇인지 캐내기도 어렵거니와 그런 책사들이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현재로서는 최룡해와 황병서 두 사람이 떠오르는 실세로 보이는데, 이들이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김정은 자신이 새로운 비전을 설계할 수 있다고 보기는 더욱 어렵다. 북한이 공개하는 자료 영상에 따르면 분야별로 현지지도를 하면서 김정은이 뭔가 메시지를 던지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그 메시지 내용이 얼마나 무게가 있는지 실효성은 있는지 의문이다. 국가 조직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으므로 대체로 황당하거나 추상적인 내용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지시를 묵살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가정 상황이 북한의 권력 내부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본다. 현실과 큰 괴리를 보이는 지도자의 지시 내용, 그리고 이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하는 지도층 인사들의 딜레마가 김정은 ‘공포정치’가 연출되는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김정은의 군대에 대한 시각과 행동이다. 김정은이 군대에 대해서 던지는 메시지 대강의 줄거리는 ‘선군정치’의 재해석이다. 그의 아버지 김정일의 ‘선군정치’는 국가정책에서 군사 분야를 최우선으로 앞세우고, 군대 원로들을 우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의 ‘선군정치’는 군사 분야에 역점을 두는 것은 변하지 않았으나 군대 원로들에 대해서는 포용보다 척결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선군정치’의 결과물로 ‘선군절’이 국가 명절로 제정되었고, 김정은이 전략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므로 선군정치 프레임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군부 실세 인사들에 대한 박해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에 대한 압박은 그야말로 노골적이다. 계급을 강등시키거나 군사 훈련 현장에 직접 투입시키는가 하면 숙청시켜 옷을 벗게 만들기도 한 다. 마치 ‘병정놀이’ 하듯 군 원로들에 대한 ‘군기잡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며 그 의도는 뭘까?

통치자 김정은이 군대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서는 이미 예고된 바 있다. 2012년 10월 30일 김정은이 군대의 최고 교육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행한 연설 내용을 보면 그 원칙이 잘 드러난다. 이 연설에서 그는 “당과 지도자에 충실 하지 않은 자는 아무리 군사가 다운 기질을 갖고 작전·전술에 영활하다해도 우리에겐 필요 없다….역사적 교훈은 당과 지도자에 충실하지 않은 군인은 혁명의 배신자로 전락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 뜻은 ‘선군정치’로 인해 막강한 권력 입지를 굳힌 군부 실세들을 약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이러한 의도는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 권력 구도의 원리를 강조한 것이다. 당이 권력의 정점에 있어야 하며, 군대와 행정부를 통제하고 국가정책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원칙인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은이 제시한 방향은 틀린 것이 아니다. 사실 중국정부도 북한의 ‘선군정치’ 폐해를 우려해 왔고, 북한의 당료들도 군 실세들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군 실세들이 어떤 폐해를 가져왔을까? 가장 큰 부작용은 우리의 장군 급에 해당하는 ‘장령’들의 수가 터무니없이 많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북한군의 장군 수는 대략 1400여 명으로 추산되므로 한국군의 3배 정도에 해당한다. 북한 군대는 서구식 직업주의 모델이 아니라 혁명군 개념으로 조직되어 있고, 특히 고위급 장군들은 정년이 따로 없고 죽을 때까지 군복을 입는 혜택을 받는다. 김일성이 군 출신이었고, 그의 동료들이 군대를 조직하고 이끌었으므로 일종의 ‘개국공신’과 같은 예우를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김정일 통치 시기까지 계속되었으므로 장군 규모는 기형적으로 늘어났고, 대부분이 노령 인사로 채워지는 고질적인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여기에다 군대가 자체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는 특권까지 누리고 있으므로 국가경제 역량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이 문제는 장군급 인사들을 축소하는 것으로 해결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김정은 의중에 있는 생각이고 그러한 메시지 전달이 군부 주요 인사에 대한 폭압 행동으로 나타난 것으로 본다.

군부 세력의 교체는 국가체제 정상화 요구에도 부합되는 일이고, 김정은 통치 입지 강화를 위해서도 넘어서야 할 과제이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방법론이다. 전문 당료 출신인 최룡해와 황병서를 느닷없이 군복을 입혀 군대를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요직에 보임한 것은 김정은이 이들을 주역으로 삼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이들은 군대에 대한 식견도 부족하고 의지도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근본적으로 북한에서 당료와 직업군인은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경력 관리가 이루어지므로 이들 사이에는 유대감이 부족하다.

역으로 노회한 군부 실세들은 통치자 김정은을 선군정치의 주군으로 추대하려는 학습 활동에 주력했을 것이다. 그래야 김정일 시기처럼 병영국가 체제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반되는 움직임이 서로 충돌하는 결과가 북한 내부의 불안정을 빚어낸 요인이라고 본다. 현재까지는 군부 원로세력이 수난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을 끝내려면 군부 원로세력들이 스스로 용퇴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김정은도 이것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장’ (한국의 중장; 별 세 개) 계급 이상의 원로들이 자체적으로 결의하여 물러나고 신진 세력들이 김정은 옹위세력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김정은 통치 입지도 강화되고 대외적 이미지도 개선될 것이다.

지금 북한체제가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이유는 김정은 통치 기반이 안정적으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통치자 김정은에 의한 군부통제가 아직 진행중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임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김정은이 이 난관을 어떻게 뛰어 넘는지를 눈여겨봐야 하지만 우리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코너에 몰린 군부 세력들이 대외적으로 군사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이 대남도발을 일으킨 배경을 분석해보면 북한 내부에서 형성되는 두 가지 조건이 눈길을 끈다. 그 첫째는 통치자의 권력이 승계되는 시점이고, 둘째가 바로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되는 시점이다.

김정일 통치가 시작되면서 핵 위기가 본격화되었고, 김정은 통치는 천안함, 연평도 포격 도발로 서막을 열었다. 그 이외의 대남 도발은 북한 군부에 의한 기획으로 감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지금 북한 내부 정세를 볼 때 북한 군부의 기획도발 위험이 높은 시점이라고 분석된다. 더구나 연평도 도발이 일어난 지 5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