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왜 ‘함경북도’인가?

현재 함경북도에는 현대식 상설시장 건설이 진행 중이며 ‘1호’로 청진시장이 11월 초 문을 열었다.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 당국은 이러한 상설시장 건설을 전국적 규모에서 실시하려고 하며 일단 함경북도가 ‘방식상학’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북한 『조선말대사전』에는 방식상학(方式上學)을 “한 단위에서 모범을 창조해놓고 그것을 본보기로 하여 일군들에게 정치사업 방법이나 방식, 선진기술의 창안이나 도입 등을 가르치고 그들의 정치실무수준을 높여줌으로써 모든 단위에서 그 모범을 본받도록 하는 상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상학은 ‘수업’을 이르는 북한 말. 따라서 함경북도는 전국에 걸쳐 현대식 상설시장을 만들기 위한 ‘시범단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함경북도일까? 탈북자 및 전문가들은 “함경북도가 가장 ‘자본주의화’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북한에서 함경북도는 ‘별천지’로 통한다. 지난 5일 통일부가 발표한 ‘북한이탈주민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04년 10월말까지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는 총 6,047명. 공개된 데이터는 없지만 이 가운데 60%이상이 함경남북도에 집중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함경북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국내 입국 탈북자 가운데 상당수가 북한내 가족과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 함경북도 주민들은 다른 지역의 북한 주민들보다 외부 세계의 실정에 밝다.

함경북도 무산군 출신의 탈북자 최철호(가명 • 38세)씨는 “무산군의 경우 집집마다 행방을 알 수 없는 가족이 한 명씩은 있을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중국이나 남한으로 “건너갔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온성군 출신의 탈북자 이연화(여 • 53세)씨도 “우리 마을의 경우, ‘중국에 한번도 갔다 와보지 못한 사람은 머저리’라고 수근거린다”고 말했다. 중국과 밀무역을 하거나 남한의 가족이 부쳐주는 돈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 함경북도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북한 내에서 상대적으로 높다. 요새는 중국에서 들여온 한국산 드라마 CD가 비밀리에 유행하고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이미 자본주의화 되어있는 함경북도에 현대식 상설시장을 건설한 것은 북한 당국이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직 ‘물들지 않은’ 다른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당국이 나서 시장경제 실험을 했다가 후퇴하는 것보다는 실패 시 위험부담이 적다는 장점 또한 있다.

청진시에 5천 ∼ 1만 평방미터 규모의 도급(道級) 시장이 문을 연 것도 단순히 청진시가 도청 소재지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올해 6월 입국한 청진 출신 탈북자 김진희(가명 • 여 • 27세)에 따르면 “청진은 항구도시로 무역이나 구호물자 전달을 위해 들어오는 배들이 많아 다른 도시보다 물자가 풍부한 곳”이라고 한다. 실제 북한으로 들어가는 상품이나 구호물자 등은 서해안으로는 남포항, 동해안으로는 청진, 원산항에 가장 먼저 닿는다. 청진항에는 도착하는 구호물자를 가장 빨리 가져가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각 기관 사람들이 항상 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물류의 집산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서 예로부터 청진시는 “도시전체가 장마당”이라고 할 만큼 시장이 융성했다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북한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은 지난 7월 청진시 인민위원장 한흥표씨를 소개하는 기사를 크게 실었다. “사람들은 이런 일꾼을 따르고 존경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민주조선』은 왕성한 일 욕심이 있는 한흥표씨가 인민위원장을 맡고 나서 하수도와 교통문제 등 해묵은 문제들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면서 “한흥표 동무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진짜배기 일꾼’, ‘통 큰 작전가’, ‘완강한 실천가’ 등으로 불린다”고 추켜세웠다. 중앙의 적극적 신임을 받는 사람이 인민위원장으로 있어 청진시가 ‘시범단위’로 선정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