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가 감동한 그 책, 한글판 있었네

▲수용소의 노래 (도서출판 시대정신)

요즘 부시 미국 대통령은 어떤 책 한 권을 읽고 대단히 마음 아파하며 측근들에게도 읽어보라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책의 제목은 『The Aquariums of Pyongyang(평양의 수족관) 』. 「Ten Years In The North Korean Gulag(북한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10년」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탈북자 출신으로 현재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이자 <조선일보> 기자인 강철환씨가 쓴 이 책은 함경남도 요덕군에 위치한 ‘15호 수용소’에서 10년 동안 겪었던 체험을 담고 있다.

‘부시가 정독한 책’이 국내외 언론에 보도된 후 DailyNK 편집국으로 “그 책의 한글판이 있느냐”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물론 있다. 한국에는『수용소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도서출판 <시대정신>이 2003년 6월에 출판했다. 그러나 이 책에는 10여 년의 연륜이 쌓여있다.

책이 처음으로 출판된 시기는 강철환씨가 대한민국에 입국한 이듬해인 1993년으로, 제목은『대왕의 제전』(도서출판 향실)이었다. 전3권으로,「병풍산의 통곡소리」(1권), 「지옥에서 부르는 노래」(2권), 「그리운 어머니」(3권)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세계 최초로 북한정치범수용소의 실상과 체험을 다룬 책이었기 때문에 당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일본에서는1994년 7월 <문예춘추>가 『북조선 탈출』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대왕의 제전(1993년, 韓) → 북조선 탈출(1994년, 日) → 평양의 수족관(2000년,佛), → 평양의 수족관(2002년, 英) → 수용소의 노래(2003년, 韓)

그러다 프랑스 <사회사평론> 편집장으로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이 많던 피에르 리굴로씨가 강철환씨의 사연을 듣게 되었고, 기존에 발행됐던 『대왕의 제전』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1년간 심층인터뷰를 한 끝에 강철환-피에르 리굴로 공저의 『Les Aquariums de Pyongyang(평양의 수족관)』이 2000년 프랑스어판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을 2002년 미국 <베이직 북스>가 『The Aquariums of Pyongyang(평양의 수족관)』이라는 영어판으로 출판하여 그 해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책 베스트 100’에 들었다.

『평양의 수족관』은 영어권 국가에서 활동하는 북한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는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최근 기독교 계통의 북한인권운동을 하는 인사가 부시 대통령에게 이 책을 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평양의 수족관』은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수용소의 노래』의 요약본에 가깝다. 『수용소의 노래』가 『대왕의 제전』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판되었을 당시 전 3권이었고, 현재 상하 2권으로 이루어져 총 4백 페이지에 달하지만 『평양의 수족관』프랑스어, 영어판은 230여 쪽 분량이다.

강철환씨의 경험 가운데 주요한 부분을 발췌한 것인데, 부시 대통령이 한글판 내용 전체를 읽었다면 더욱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다음은 2003년 6월 『수용소의 노래』가 출판되었을 당시 <시대정신> 서평.


죽음을 일상적으로 접할 지경의 참혹한 현실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러한 상황에서도 살고 싶은 인간 본성의 발현이며 인간의 존엄을 새삼 일깨워주는 것이다.

유태인 학살의 증거물로 유럽인과 세계인의 머리와 가슴에 경종을 울린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잔악함과 고귀함에 대한 교훈을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 전하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 않는 ‘인간말살’의 역사가 오늘도 한반도 북녘에서 한 독재자에 의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이 책은 10년 전 『대왕의 제전』(향실, 1993년 7월)으로 출판되어 세계인의 양심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오늘 『수용소의 노래 上 ∙ 下』로 다시금 인류를 향해 ‘인간존엄’의 화두를 던지는 이 책을 통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를 살펴보자.

“지옥의 형국과 같은 이곳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치고 멍들 대로 멍든 몸과 마음은 선량한 사람들도 마음에 독을 품게 만들었다. 가족들로부터 독설을 듣는 그 장본인들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 예심(조사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모진 고문을 받았기 때문에 몸 한구석 어디 멀쩡한 데가 없다. 따라서 그렇게 허약해진 사람들은 결국 이곳 생활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만다. 이들은 우선 그 허약한 몸으로 이곳에서 할당해주는 중노동을 견디지 못한다. 이미 병들어 있는 몸이기 때문에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뒤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설상가상으로 보위원이나 감독의 구타가 가해지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가 몇 차례 반복되고 나면 살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만다. 거기에다가 온 식구들의 눈총과 구박까지 한 몸에 받고 나면 쓰라린 자책과 자괴(自愧)에 시달리게 되고, 얼마 못 가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같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 중에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경우가 있었다.”
– 수용소의 노래 上, ‘평토(平土)해 치운다’ 중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강제노동으로 인해 어린 학생들의 몸은 성장이 중단되고, 한줌도 안 되는 강냉이 식사로 만성적인 영양실조와 허기를 견뎌야 한다. 24시간 꼼짝 않고 서있어야 하는 벌, 산열매를 따먹었다는 이유로 손에 박힌 진을 뺀다며 손바닥으로 운동장을 수십 바퀴나 도는 벌, 혼절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는 매질, 강제노동 현장에 심어 논 스파이와 고자질을 종용하는 생활 등 인간성마저 상실케 하는 이곳의 생활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밭에는 죽은 시체의 뼈가 널브러져 있고, 공개처형된 주검 위에 침을 뱉고 돈을 던져야 무사한 현실, 최고의 영양식인 쥐고기 등 차마 인간의 형상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해야만 목숨이 연명되는 현실을 직접 보지 않고 믿을 수 있을까?

이러한 지옥 같은 현실을 폭로한 지 어언 10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수용소에서의 강제노동을 일반 사회의 막노동으로 이해하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산열매 따먹다 맞은 일도 일종의 낭만쯤으로 생각하고, 시커멓게 피부가 죽을 정도로 맞는 매질을 체벌 정도로 이해하고, 시체의 뼈와 공개처형은 본 적이 없어 상상이 잘 안되고, 쥐고기는 햄버거에나 들어있음직한 고기로 생각하는 현실 앞에 저자가 느꼈을 당혹감과 낭패감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이 책은 저자의 어린 시절,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여과 없이 전하고 있다. 일부러 미화하지도 폄하하지도 않았다. 단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했을 뿐이지만 이 책이 전하는 현실이 너무도 충격적이라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믿기지 않았던 사실이 현실로 다가와 분노를 금치 못하게 된다. 그 다음 자신과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할 지 곱씹어 볼 일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를 인정한 마당에 더 이상 그 존재 유무에 대한 갑론을박은 끝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곳의 실태를 이해하고 그 참상을 알려 하루속히 인간 이하의 삶을 강제하는 정치범 수용소를 해체시키는 일만 남았다. 이 책은 그 길잡이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저자의 인생역정이 대화체로 쓰여 읽는 재미도 적잖다. 독자들의 일독을 간곡히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