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형법개정 발표회

▲ 북한법연구회 월례 발표회를 진행하고 있는 장명봉 국민대 법대교수(우측에서 두번째)

북한법연구회(회장: 장명봉 국민대 법학과 교수)는 27일 목요일 저녁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월례 발표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인 윤대규 박사가 ‘북한 형법개정의 배경과 의미’라는 주제로 지난 2004년 4월에 개정된 북한 형법에 대해 발표했다.

다음은 발표문 요약.

▲ 북한 형법개정에 대해서 발제하고 있는 경남대 극동문제 연구소 부소장 윤대규 박사

북한은 1995년, 1999년에 이어 다시 5년만인 2004년 4월에 형법을 개정하였다. 이렇게 90년대 이후 거의 5년 차로 형법이 자주 개정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사회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정형법의 변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개정 전의 161조에서 305조로 조문의 수가 대폭 증대되었다. 개정 전의 조문을 더욱 세분화하여 내용상 큰 차이가 없이 조문 수만 늘어난 경우도 있으나 전혀 새로운 조문이 추가된 경우도 많다. 특히 새로운 유형의 범죄에 대한 조항이 많이 추가된 것은 눈여겨볼 만한 일이다.

두 번째로, 유추해석규정이 삭제되고, 죄형법정주의를 명문화한 점은 큰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즉, 개정 전 형법 제10조의 유추해석을 허용하는 규정을 완전히 삭제하였으며, 대신에 개정형법 제6조에 범죄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행위는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벌분야에서도 로동교화형으로 단일화되어있던 자유형(자유에 제약을 가하는 형벌)을 무기로동교화형과 유기로동교화형, 로동단련형으로 세분화하였다. 그동안 형법의 규정 밖에서 현실적으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던 로동단련형을 형법에 포괄함으로써 형벌체계가 일원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 중반 경제난으로 국가의 계획경제 시스템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됨에 따라 주민들이 스스로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강구하게 되고, 이로 인해 국가의 통제가 이완되어가는 악순환이 발생하자, 1998년에 헌법개정을 통해 개인이나 조직의 경제활동 범위를 확대하여 합법화 한 바 있다. 이는 곧 전 북한주민의 상인화를 초래하여 국가의 질서유지와 사회통합을 위한 국가의 대책이 시급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종합대책이 형법의 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상행위가 만연하여, 계획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국가의 경제시스템이 더욱 악화되자 형법의 개정을 통해 허용된 범위 내에서의 상행위는 강력하게 통제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보이며, 그만큼 주민들에게는 위하감(威嚇感)이 증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상행위를 비롯한 개인 상호간의 거래행위가 활발해지자 그에 따르는 분쟁이 증대하기 마련인데, 이전까지는 분쟁의 해결을 당사자가 스스로 수단껏 해결하는 이른바 자구행위(自救行爲)가 일반화되어있었다. 그러나 개정형법에서는 개인의 실력행사에 의한 이러한 자구행위를 금지하고 반드시 법에 의하여(소송을 통해)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형법이 상행위 자유를 비롯한 경제활동과 관련하여 많은 규정이 추가되었으나 규정의 내용을 보아서는 원칙적으로는 시장경제제도를 수용하고자 하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경제적 요소를 최소화하며 가능한 한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수화하고자 의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형법의 개정을 여전히 헌법에 규정된 사회주의경제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인 시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개정형법에서 특히 주목할 것의 하나는 형벌이다. 로동교화형 하나로 일원화되어있던 형벌을 무기로동교화형과 유기로동교화형, 로동단련형으로 세분화 한 것 뿐만 아니라, 국가의 형법체계 밖에서 행정기관의 재량권에 크게 좌우되고 있던 로동단련형을 형법내에 포함함으로써 로동단련형에 대한 국가 형벌권 행사를 더욱 신중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북한의 최대 과제인 경제회생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다. 자연히 대외 접촉이나 무역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개정형법은 이와 같이 점점 확대되어가고 있는 대외경제교류에 대비하기 위한 사전 대책으로 볼 수 있다. 대외교류와 관련하여 대비한 조문이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개정형법은 또한 유엔을 비롯한 국제적 압력에 대한 대응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유엔인권소위원회는 이미 97년과 98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인권 결의를 한 바 있고, 미국의 북한인권법 발동도 또 하나의 강력한 압력이다. 외부의 조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국제적 압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그 동안 유추해석의 허용으로 크게 비난 받아왔던 북한이 죄형법정주의를 명문화함으로써 이러한 비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형법의 규정을 더욱 상세하고 구체화함으로써 형법이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사회생활을 규율하는 살아있는 규정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의 입법으로 향상시켰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대내적인 통제규범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대외적인 정치적 효과도 기대한 것으로 사료된다.

북한의 2004년 형법개정을 현재 북한사회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의 대책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북한이 새로이 형법을 개정했다고 해서 이것이 곧 현실에서 그대로 집행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죄형법정주의의 명시, 구성요건의 명확화, 형벌체계의 일원화 등으로, 적어도 과거에 비하여 형사처벌에 대한 당국의 재량권이 그만큼 제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개정형법은 실제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탈현상을 규제하기 위한 실용적인 의도의 결과물이기도 한 만큼 더 적실성있고, 따라서 집행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하여 큰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정리/김인희 대학생 인턴기자(고려대 행정학과 4년)kih@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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