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홍건적? 그들은 왜 복면을 했을까

9월 11일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철거 집회’를 취재했던 기자가 캠코더로 촬영해 온 영상을 보았다. 주최측이 내건 정식 집회명칭은 ‘미군강점 60년 청산, 주한미군 철수 국민대회’였다.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녹화한 2시간 분량의 영상을 쭉 살펴보니 의아한 점이 있었다. 집회를 마치고 참석자들은 이른바 ‘인간띠잇기’라는 행사를 했는데,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마스크나 복면을 하고 있었다.

물론 1980, 90년대에도 가투(街鬪 ; ‘가투투쟁’의 준말)에 나갈 때는 남녀 할 것 없이 마스크나 복면을 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당시 ‘가투’는 거의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폭력시위였는데, 경찰의 채증(採證)카메라에 걸리지 않기 위해 그랬다. 실제로 다른 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었다가, 과거에 ‘가투’ 도중 마스크가 잠깐 벗겨졌을 때의 얼굴이 사진에 찍혀 혐의가 추가된 사례도 많았다.

둘째, 최루탄 때문이었다. 경찰이 쏘는 최루가스의 연기를 피하기 위해 마스크는 ‘가투’의 필수품이었고, 치약이나 주방용 랩(wrap), 담배연기 등이 보조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셋째, 운동권 학생들의 이른바 ‘집안문제’ 때문이었다. 혹시 ‘가투’현장 주변을 지나가던 가족이나 친척, 지인들이 볼까봐, 신문의 현장사진 속 주인공으로 등장할까봐 얼굴을 가렸다. “당신 아들(혹은 딸)이 데모를 하던데?”라는 옆집 아줌마의 신고(?) 때문에 운동권 생활에 지장을 초래한 경우도 있었다.

평화적 집회에 웬 복면인가?

그런데 이번 ‘맥아더 동상 철거 집회’에서 마스크와 복면을 했던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위 세가지 이유에 대입시켜 생각해보자.

첫째, 주최측은 ‘평화적인 집회를 하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굳이 채증을 피하기 위한 ‘얼굴 가리기’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평화적인 집회라면 얼굴을 내밀고 환히 웃으면서 해야 할 것 아닌가.

“처음에는 평화적인 집회를 하려고 했는데 경찰이 과잉대응을 하니까 정당방위로써 폭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인간띠잇기’가 폭력적으로 변질된 중반쯤에나 마스크와 복면 착용을 시작했어야 할 텐데, 이들은 애초부터 얼굴을 가리고 집회를 시작했다.

“경찰이 폭력적으로 대응할 것을 미리 알고 준비했던 것”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번 집회 주최측은 운동권보다는 점쟁이로 나서는 것이 낫겠다. 아니면 경찰수뇌부와 ‘문제를 한번 일으켜보자’고 사전 교감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둘째, 경찰은 1998년 9월 ‘무(無)최루탄’ 선언 이후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지방경찰청에서 최루탄을 다량 폐기하기도 했다.

셋째, 요즘은 인터넷 때문에 집회참석자들의 사진이 과거보다 더 용이한 방법으로 널리 확산될 수 있다. 그래서 ‘집안문제’를 더욱 의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생이 아닌, 30~40대의 나이대로 추정되는 사람들까지 마스크와 복면을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의외였다.

이들의 복면을 보니 붉은 스카프에 하양 글씨로 ‘민주노총 노동자 통일선봉대’라고 적혀있었다. 민주노총 소속이라면 이미 직장과 가족을 가진 어엿한 성인일 텐데, 모두가 얼굴을 가렸다. 마치 홍건적(紅巾賊)과도 같았다. 지각(知覺)있는 성인이라면 당당히 얼굴을 내놓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시위에 참가할 것이지 무엇이 두려워 얼굴을 가렸던 것일까?

위 세가지 이유 말고 ‘새로운’ 이유가 있을까 싶어 한참을 고민했다. 혹시 현장에 흙먼지가 많았냐고 취재기자에게 물어보니 그렇지 않았단다. 그날 날씨가 쌀쌀했나 싶어 기상청 자료를 살펴보니 섭씨 31도를 넘는 늦더위였다. ‘환절기에 집단으로 감기가 걸렸나’ 추측도 해보았는데, ‘반미운동권만 걸리는 특별한 감기가 있다’고 의학계에 보고된 바도 없었다.

애초에 계획된 폭력시위

결국 이유는 단 하나로 좁혀진다. 애초에 폭력적인 시위를 할 것을 작정했던 것이다. 전경의 눈을 찔러 실명위기까지 몰고 간 죽봉(竹棒). 근처에 대나무 숲이 없다고 하니 그것도 사전에 준비해 간 것이다. 우발적으로 그 자리에서 꺾어 휘두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행위를 위해 그들은 집회 초기부터 단단히 ‘얼굴단속’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회 주최측은 오늘(14일) 경찰청 앞에서 ‘경찰폭력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성명서에 “경찰측의 불법적인 집회방해와 살인적인 폭력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녹화된 영상을 아무리 살펴봐도 경찰이 집회를, 특히나 불법적으로, 방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보수단체가 반미단체들의 자유공원 진입을 가로막자 경찰이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쌍방간의 폭력행위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주최측이 폭력행위를 준비하고 간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주최측은 왜 이런 것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평화시위’를 내세웠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적인 원칙을 지켰어야 할 것 아닌가.

덧붙여, 보수단체가 반미단체들의 집회현장에 계란과 돌을 던진 것도 대단히 옳지 못한 태도이다. 이상(理想)이 옳다면 그에 다가가는 방법 또한 옳아야 한다.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답답함과 분노의 심정은 깊이 이해가 되지만, 그러한 행동은 오히려 대중의 지지를 잃는 자해행위다.

여하튼 반미단체들은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확신한다면 좀 더 당당해지기 바란다. 마스크와 복면을 둘러 쓰고 단체행동에 나서는 집단을 국민은 신뢰하지 않는다. 경찰을 규탄할 것이 아니라 진지한 반성의 모습부터 보여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기 이전에 자신들 내부의 폭력성부터 철수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